나는 이른둥이로 태어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로 심한 뇌병변장애를 지니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장애가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았지만 장애로 인해 늘 위축되고, 자신감 없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일반학교, 일반학급에서 시쳇말로 존재감 없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학교생활에서의 성실성을 눈여겨 보신 교수님의 추천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공을 살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에 취업에까지 성공하였지만, 경쟁구조 속 서서히 장애가 심해지면서 직장을 퇴사하고 재가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반전은 나의 진짜 배움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지역 장애인협회에서 활동하던 중 선배 장애인의 권유로 지역장애인자립생활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되면서, 장애에 대한 유용한 지식과 함께 여러 장애 유형의 장애인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장애와 그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더했다.
그리고 평생 인정하기 싫었던 나의 장애를 완전히 인정하고 편한 맘이 되었다. 그러고 나니 그동안 숨기거나 부끄럽게만 느꼈던 나의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나와 같은 장애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공부를 결심했다.
지난 2013년에 석사과정 졸업 후 16년이나 지나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흔이 넘어, 장애인과 밀접한 장애인 재활공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통학시간을 아끼고자 기숙사에서 1년간 생활하는 노력과 주변 동료학생들, 무엇보다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그간의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원활히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의 배움을 바탕으로 에이블뉴스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배워서 함께 나누자!’는 평소 소신대로 모자람이 많지만, 지난 2014년부터 350편이 넘는 칼럼을 게재하면서 지금까지 실천 중이다.
학업면에서도 학술적인 관심사인 ‘장애인 모바일 접근성’ 관련 논문으로 한국재활복지공학회 학술대회 우수논문상 등 국내외 여러 학술지에 논문이 실렸고, 이러한 결실들이 모여 2016년 ‘BK21플러스사업’ 우수 연구 인력으로 선발되어 교육부총리 표창까지 수상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학부과정, 석사과정, 박사과정의 출신학교와 전공분야가 다 다르다. 학부전공은 생물학, 석사는 의용공학, 박사는 재활공학에 이르기까지 내가 관심을 가졌거나, 필요로 했던 분야를 찾다 보니 나온 결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생물학을 통해 생물 또는 인체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의용공학을 통해 의료기기와 관련기술에 대한 식견을 얻었으며, 재활공학을 통해서는 그간의 인체와 의료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장애당사자로서의 경험에 접목한 학문간의 융합은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나의 배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장애인 관련 학문을 공부, 연구하다 보니 장애당사자들을 만나고 의견을 듣다 보면, 항상 연관되는 것이 ‘사회복지’였다.
그래서 2023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을 감행한 것이다. 자연과학과 공학을 넘어,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나의 네 번째 대학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 기반의 자율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방식의 요구가 조금은 낯설지만 최선을 다해 적응해 나갔다 오히려 나와 같은 장애당사자에게는 적합한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배움에 대한 나의 무모하고 줄기찬 도전은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배움은 끝이 없다는 명언은 이전 시대 배우고자 하는 자기의지를 강조한 말이라면, 발전을 거듭하는 현대사회는 인터넷과 자조적인 학습모임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지속적인 학습을 요구하는 ‘평생학습 필수시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평생교육 필수시대’에 장애인들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첨단기술 기반 새로운 제품과 관련 서비스가 시시각각 생겨나고 소멸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서 함께 어울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영위하려면 사회와 일상에서 일어나는 정치, 경제, 문화,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학습과 적용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하고 학교가 요구하는 교과목을 이수하고 졸업에 필요한 모두 학점을 충족하였고, 거기에 2급 사회복지사자격 취득에 필요한 160시간의 사회복지실천현장실습과 필수10과목, 선택 7과목 이상을 이수하여 2급 사회복지사 취득 자격을 충족하여 지난 11월에 2급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심한 정도의 장애당사자로서 사회복지실천현장실습 과정은 나름 육체적으로 힘든 과정이었으나 주변의 도움으로 제대로 된 과정을 잘 마무리하였고. 곧 사회복지사 1급 자격시험 응시를 앞두고 있다.
무엇보다 그간 단편적으로만 알아 왔던 사회복지학에 대해 체계적으로 관점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생각의 전환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좋은 동료들과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면서 세상에 대해 이름 짓고, 세상을 만들어가며, 임시방편적인 ‘사례관리’의 사회복지가 아니라 불쌍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는 ‘사회관리’의 관점과 철학의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배움에 관해서 한번더 욕심을 부려봤다. 그것은 방통대 사회복지학과 졸업을 앞두고 공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지 27년 만에 이번엔 사회복지학으로 두 번째 석사과정을 시작하려 한다.
장애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 육체적으로 좀 더 깊고 넓은 배움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힘 닿는데까지 배움에 대한 도전을 2025년에도 현재 진행형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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